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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한국의 비판

DeveloperYong 2018. 6. 29. 00:23
식민사관의 비판

이전 글에서 식민사관에 대하여 숙지하고 보셔야 이해가 쉽습니다.

https://blog.naver.com/billy106302


타율성론 비판


타율성론은 한국사의 전개과정이 외세에 의하여 결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한국은 강력한 대륙국가인 중국과 남쪽에 해양국가인 일본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반도국가라는 것이다.



사실 만주지방에 역사적 배경을 두었던 고조선을 비롯하여 고구려, 부여, 발해의 존재는 적어도 우리 역사를 반도사로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고려시대 이후 약 1000년 동안의 우리 역사는 반도사라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지리적 결정론은 시대적인 상황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또 반도국가라 하여 모두가 외세의 힘에 휘둘린 역사를 갖지는 않았다. 일례를 들어 
그리스나 로마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특히 로마는 이탈리아반도를 배경으로 성장한 국가이다. 로마는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연후에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였고. 대륙의 유럽세계를 정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강국인 이집트까지도 정복하였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해석은 땅덩어리를 통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엮어 가는 인간과 인간집단간의 흐름으로서 해석하여야 한다.

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28586/




반도적성격론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지리적경정론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인데,
한국사가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다보니 강국의 눈치를 보는 습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 내용의 반례를 들면 거란족의 침입 때 고려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우리는 서희장군의 당당한 외교단판과 강감찬장군의 활약에 대하여 잘 알고있다. 


일선동조론 비판


일선동조론에 대한 비판은 두가지 측면에서 제기해 볼 수가 있다. 하나는 고고학적 측면이다. 만일 왜가 남한지역을 200년 동안이나 군사적인 지배를 하였다면 그 지역에서 이러한 사실을 입증할 만한 일본의 문화유산이 다량 발견되어야 한다. 하지만 해방직후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 까지도 그와 관련된 적극적인 증거가 나왔다는 소식이 알려진 바 없다. 다시 말하자면 통치기구로서의 임나일본부가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둘째는 문헌적인 측면이다. 일선동조론의 무대과 되고 있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본다면 그 지역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야라는 여러 개의 국가가 존재하였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임나일본부 문제는 가야제국과의 상호 관련성을 검토해야만 한다. 4세기 후반 가야지역으로 패주한 왜군을 추격해 온 고구려 광개토왕의 군대에 의하여 가야연맹은 해체되었고, 그 이후에 나타난 후기 가야연맹은 백제, 신라 양측의 압력에 시달리다가 결국 6세기 중반 신라에 병합되고 만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sdaram&logNo=150171286109&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사료상에 나타나는 임나일본부에 대한 해석은 이와 같은 가야사의 발정 속에서 해석되어야한다.이제 한국 학계에서 임나일본부에 대한 해석을 군사적인 통치기관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는 찾을 수가 없다. 임나일본부는 가야와 왜국간에 교섭을 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교역기구와 유사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정체성론 비판


한일합방을 합리화하려는 식민사관중에서도 가장 정교한 이론으로서 오늘날까지도 논란거리(식민지근대화론)가 되고 있다.

http://blog.ohmynews.com/yby99/305937

한국경제가 정체된 요인으로서 봉건주의적 요소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분석해보자. 경제 발전 단계설에서 말하는 원시공산사회 - 고대노예제사회 - 중세봉건사회 - 근대자본주의사회로 발전했다는 것은 유럽경제발전의 모델로서 제기된 것이다.
요컨데 이는 유럽의 경제발전 모델이지 그들과는 자연환경, 지리, 역사, 문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이한 아시아지역에 일괄적으로 적용시키기는 어렵다고 한다.

일례를 들어 오늘날 세계적인 부유국으로 등장한 중동국가들에게 이러한 이론은 맞지 않는다. 20세기 초엽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의 하나로 꼽히던 중동이 불과 몇 십 년 만에 부유한 국가로 급성장한 배경은 위의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조선시대는 근대사회(자본주의)의 여러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경제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17,8세기 활발한 상품화폐경제의 유통과 전국에 걸친 장시의 개설, 공장의 설립 등으로 인한 자본의 축적으로 이미 자본주의의 기틀이 마련되어 있었다.
18세기 중반이후 신분층의 분해, 대지주 발생, 임금노동층 발생 등 근대 자본주적 요소들이 나타났다.


정체성론은 그 이론의 합리성, 치밀성 등으로 인하여 아직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다시 포장되어 21세기인 오늘날에도 학계의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즉 식민지시절에 형성된 자본주의(식민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근대화가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사실 식민시절의 여러 가지 경제관련 수치와 통계를 보면 분명히 그러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수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식민지수탈론의 입장에서만 파악하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것이 피식민지에 대한 수탈과 지배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면 식민지근대화론은 분명 한국사에서 부정적인 입장으로 남게 될 것이다.



참고자료 : 한국사의 어제와 오늘(공석구)
     우리안의 식민사관(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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